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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

브릿지경제 viva100 2022. 6. 18.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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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전시장에 처음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프랑스 마리세유 프라도 거리’(Allee du Prado, Marseille, France, 1932)는 사진이지만 한폭의 그림과도 같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의 모든 것’이 집약됐다고 평가받는 대표작으로 이파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나무가 즐비한 거리, ‘찰칵’하는 순간 중절모와 망토에 우산을 든 신사가 돌아보는 듯한 이 사진은 미술로 첫발을 디딘 그의 여정과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프랑스 마리세유 프라도 거리’(사진=허미선 기자)

섬유공장의 장남으로 태어나 부유하게 성장한 브레송은 가업을 잇기를 바라는 부모의 뜻을 뒤로 하고 미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프랑스 마리세유 프라도 거리’는 그렇게 회화작업을 하던 그가 카메라를 접하고 사진작가로 전환하면서 찍은 초창기 작품이다. 회화 작업 당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구도가 고스란히 담겼다.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하 브레송)의 사진전 ‘결정적 순간’(10월 2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은 그렇게 사진 한장으로 시작한다. 

 

그가 1932년부터 1952년까지 현장을 찾았던 영국, 미국, 멕시코, 스페인, 프랑스, 인도, 중국 등 나라별로 섹션을 꾸린 전시의 마지막에는 로버트 카파가 ‘사진작가들의 바이블’이라고 칭송한 사진집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 1952)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를 볼 수 있는 미디어도 마련돼 있다.

“2분 이상 볼 수 있어야 좋은 사진이다.”

이렇게 말하곤 했던 브레송은 사진 한장에 담긴 이야기와 세계에 관객이 온전히 몰입하기를 바랐고 그런 사진을 찍고 싶어 했던 작가다. 모두에게 추앙받는, 성공한 사진작가가 됐을 때도 “내 사진에 어떠한 설명도, 대단한 것처럼 포장도 하지 말라”는 신념을 고수했던 작가이기도 하다.

이에 그의 사진전 ‘결정적 순간’의 작품 설명은 최근 전시회에서 주로 쓰이는 QR코드가 아닌 ‘텍스트’로 이뤄진다. 이에 대해 전시를 기획한 케이트팜의 이지연 대표는 “사진마다 담긴 스토리를 보다 진중하고 세심하게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고 전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첫 번째 라이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회화작가에서 사진작가로 방향전환을 한 브레송은 당시 주류였던 초현실주의 사진과의 차별화를 고민하다 거리로 나섰다. 거리, 골목 그리고 역사적 현장 등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포토저널리즘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이지연 대표는 “당시의 사진기들은 굉장히 컸기 때문에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며 “하지만 브레송은 당시 현존하던 카메라 중 가장 작은 라이카를 들고 군중들 혹은 전쟁터에 섞여 사진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에서 만날 수 있는 첫 번째 라이카 카메라(사진=허미선 기자)

‘결정적 순간’에서는 “내 심장과도 같다”며 애착을 보였던 브레송의 첫 번째 라이카 카메라도 볼 수 있다. 1931년 구매한 이 카메라에도 역시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겼다. 전쟁 포로로 잡혀가기 전 브레송은 카메라를 농가의 땅에 묻어두었다. 3년 뒤 극적으로 탈출해 다시 찾은 라이카로 그는 사진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이 대표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브레송의 모습은 언제나 저 라이카의 스트랩을 손목에 휘감고 있었다”며 “늘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녔고 언제든 사진을 바로 찍을 준비가 돼 있었던 사람”이라고 전했다. 어쩌면 스마트폰으로 일상의 순간순간을 찍어 기록하고 공유하는 지금 사람들의 문화는 그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시니컬한 두 앙리가 만들어낸 ‘결정적 순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은 ‘사진작가들의 바이블’로 평가받는 브레송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 70주년 기념전시다.(사진=허미선 기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은 그의 동명 사진집 발행 70주년 기념 전시다. 이번 사진전에는 브레송의 사진을 비롯해 사진집 출간을 위해 다양한 이들과 주고받은 자필 편지들이 함께 전시된다.

사진집 ‘결정적 순간’의 편집자이자 컬렉터 테리아드, 제목을 지은 사진작가이자 출판사 대표 딕 사이먼, 거동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책 커버아트를 손수 그려주겠다는 약속을 지킨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등과 주고받은 자필편지, 일화, 이야기 등이 사진 한장 한장에 깃들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이지연 대표는 “그 편지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며 “편지를 읽다 보면 브레송은 굉장히 차가운 사람이었지만 일을 할 때는 친절하고 따뜻했으며 애교도 많았다는 알 수 있다”고 전했다. 그의 그 따뜻함과 친절함은 ‘상업사진 같지 않았던 상업사진’에서도 엿보인다. 이 작업 당시 만난 유진 스미스 등을 비롯한 사진작가들과 브레송은 매그넘 포토스를 창립하기에 이른다.


‘결정적 순간’의 표지, 앙리 마티스의 초상 등은 브레송과 마티스, 시니컬한 두 ‘앙리’의 관계가 고스란히 담겼다. 화가 앙리 마티스는 누구도 자신의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할 정도로 지니컬했다. 그런 그의 사진을 찍어야 했던 브레송은 작업실 구석에 조용히 머물다 앙리 마티스가 자신의 존재를 잊어갈 때쯤 조심스럽게 셔터를 눌렀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 마지막 섹션에는 사진집을 훑어볼 수 있는 미디어가 마련돼 있다(사진=허미선 기자)

그 애티튜드에서 자신을 배려하는 마음을 읽어낸 앙리 마티스는 브레송에 틈을 내주었고 그렇게 두 ‘앙리’의 관계는 돈독해지기 시작했다. 브레송이 사진집을 낸다면 ‘커버작업은 내가 하겠다’ 약속한 앙리 마티스는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켰고 며칠 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진에는 앙리 마티스와의 일화처럼 유명인사, 역사적 순간 등 ‘결정적 순간’들이 담겼다. 영국, 미국, 멕시코, 스페인, 프랑스, 인도, 중국 등에서 찍은 간디의 장례식, 영국 조지 6세의 대관식, 독일 데사우 나치 강제수용소, 중국의 골드러시 당시 공황상태가 돼버린 사람들 등 그야 말로 ‘결정적 순간’들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