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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없던 이.순.원을 '발견'하다!

브릿지경제 viva100 2022. 9. 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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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검은 얼굴은 ‘육사오’의 북한군 역할에 찰떡이었다. ‘롤린’의 군인버전 춤사위를 제대로 보여준 이순원. (사진제공=씨나몬㈜홈초이스, 싸이더스)

중고등학교 때 춤동아리에서 ‘좀’추는 편이었다. 팀을 만들어 대회도 나가며 실력을 쌓았다. 비보이쪽은 아니었지만 합을 맞춰서 하는 하우스 댄스가 전공이었다. 전문적이진 않아도 취미로 ‘춤’만한게 없었다. 대학은 체육입시로 일찌감치 가닥을 잡았다. 우연히 따라간 친구의 동아리가 하필(?)극단 대표가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하는 곳이었다.

무대 위에서 하는 모든 몸짓이 경이로웠고, 무턱대고 “가르쳐달라”고 덤벼들었다. 돈도 시간도 없는 고단한 상황이었지만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최선을 다했다. 체대생이 될 뻔한 배우 이순원이 연기를 전공하게 된 히스토리다.

“나중에 보니 당시 함께 연기입시를 준비했던 친구들은 모두 떨어지고 저만 연극영화과에 붙었더라고요. 함께 실기를 준비했던 절친의 아버지가 차로 태워다 주셨는데 얼마나 미안하던지. 이후 학교를 졸업하고 연극무대에서 10년, 이후 아내를 만나 드라마와 영화까지 영역을 확장하게 됐죠.” 

 

그는 ‘육사오’의 흥행을 이끈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이순원은 모든 배우의 공을 출연 배우들의 호흡으로 돌리는 모습이었다. (사진제공=씨나몬㈜홈초이스, 싸이더스)

지난달 24일 영화 ‘육사오’는 무려 한달 넘게 극장가에서 선방 중이다. 개봉을 앞두고 최약체에 가까운 극장수를 배정받았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손익분기점인 160만 명을 넘고 흥행순항중이다. 바람을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버린 57억 1등 로또를 둘러싼 남북 군인들간의 코믹 접선극으로 이순원은 북한군 병사 최순일로 나온다.

극중 고위장교이자 남다른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로 맞교환 포로가 되어 잠시 북한으로 건너온 말년 병장 천우(고경표)를 전담마크하는 인물이다. 돈에 대한 욕심보다 남한에게만큼은 지면 안된다는 사상 교육이 단단히 박혀있다. 이순원은 “어떻게 보면 북한군의 FM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남한의 문물을 아예 모르는 철벽 캐릭터는 아니고 아는 것 만큼은 즐길 줄 아는 인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인상이 다부진 이순원은 평소에도 “강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그렇기에 장난끼가 심한 평소의 모습을 이번 캐릭터에 녹여내려고 무척 애썼다고. ‘육사오’에서 가장 큰 웃음이 터지는 장면은 대한민국 군인이 애국가보다 더 많이 불렀다는 걸그룹 브레이브 걸스 ‘롤린(Rollin’)의 안무신이다. 북한군복을 입은 이순원이 리듬에 맞춰 추는 춤사위는 그의 유연함 만큼이나 관객들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다. 

 

영화 ‘육사오’는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공연과 연극 무대로의 확장을 조율중이다. (사진제공=씨나몬㈜홈초이스, 싸이더스)

“원래 곡은 ‘롤린’이 아니었고 중간에 서너 번 곡이 바뀌었어요. 한마디로 연습곡이 계속 변경된거죠. 하지만 이게 군대 영화기도 하고 그 전부터 이 곡의 선풍적인 인기는 익히 알고 있었기에 춤사위를 좀 더 여성적으로 연마(?)해서 촬영한거죠. 학생때도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춤선이 곱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터라 관객분들이 그 부분에서 뻥터진 것 같아요.”

‘육사오’는 창작극과 코미디 연극을 주로 한 이순원에게 장르만 다를 뿐 ‘무대의 맛’을 만끽하게 한 소중한 작품이다. 대학교 캠퍼스 커플이었던 아내가 처음 공개오디션을 추천했을 때만 하더라도 “후배들과 경쟁할 수는 없다”며 손을 내저었던 그였다. 나름 대학로를 주름 잡았던 무대성골 출신이었던 것도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공개 오디션에서 저를 눈여겨 보신 분이 지금의 소속사를 추천해주셨어요. 20분짜리 단편일이언정 허투루 하지 않았습니다. 단역도 수없이 했지만 아내 덕분에 버틸 수 있었어요. 아내 이름이 육소영인데 이번 영화의 제목도 ‘육사오’잖아요. 제 행운의 숫자는 아무래도 ‘6’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요즘 행복합니다.”

 

첫 촬영이었던 배우 윤병희와의 총기신. 무명이던 시절 부터 동거동락했던 두 사람은 이 장면을 찍으며 유달리 코끝이 시큰해졌다고. (사진제공=씨나몬㈜홈초이스, 싸이더스)

45회차의 촬영기간동안 이순원이 촬영 하는 분량은 반 이상이다. 여기에 고경표,이이경을 비롯해 음문석,곽동연, 김민호등이 “나보다 형이 더 돋보여야 한다”면서 분위기를 몰아준것도 한 몫했다. 지금의 결과도 기쁘지만 ‘육사오’의 촬영은 흡사 하나의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과 비슷했다. 한 신을 놓고 배우들이 모두 모여 자신의 아이디어를 내고 리허설을 반복했다. 주52시간 근로가 당연시 되어야 할 현장에서 그들은 모두 잠을 줄이고 술과 수다를 나누는 대신 연기의 합을 맞춰 나갔다.

“워낙 아이디어가 넘치고 호흡이 좋으니까 다들 ‘영화가 잘 되면 연극이나 공연으로 내도 재미있겠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절 코미디의 향수를 제대로 충족해주는 작품이니까요.”

이순원은 내달 개막하는 제 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장항준 감독의 신작 ‘오픈 더 도어’를 들고 레드카펫을 밟는다. 과거 ‘기억의 밤’으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장감독이 영화 크랭크업 후 “너의 첫 장편 주연작을 내가 찍을 수 있어서 기쁘다”라는 소감을 남길 만큼 찰떡 호흡을 보였다는 후문. ‘오픈 더 도어’는 동시대 한국영화의 역량과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섹션인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에 초대됐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