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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궁합 봐드립니다… "나는 행복한 와인 중매쟁이"

브릿지경제 viva100 2022. 4. 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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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진 와인도어 대표 (사진 제공=와인도어)

보디감, 빈티지, 품종….  와인 소개에서 자주 볼 수 있으나, 와인을 자주 찾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용어들이다.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와인은 진입 장벽이 높은 주종이다. 와인도 직접 마셔 보고 구매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같은 니즈를 실제로 구현한 사람이 있다. 국내 최초로 ‘와인 가이드’ 서비스를 도입한 곽성진 와인도어 대표다.

 

곽성진 대표에 따르면 와인 가이드는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곁들이는 음식까지 함께 추천해 주는 소믈리에와 와인숍 점장의 중간 지대에 있는, 국내에서는 새로운 포지션이다.

작년 1월에 문을 연 와인도어는 와인 가이드 서비스로 입소문을 타면서 와인 애호가 뿐 아니라 ‘와린이’들도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이 가게가 다른 와인숍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단순 시음이 아니라 취향 찾기의 여정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와인도어에서의 테이스팅은 공식적으로 최대 10종(무료 8종, 유료 2종)까지 가능하지만, 사실상 고객이 만족하는 와인을 찾을 때까지 진행되고 있다. 앞에 있는 ‘와인 어드바이저’의 안내에 따라 소량의 와인을 차례로 시음하면서 선호하는 맛과 향을 알아 가고, 비슷한 와인들을 가격대별로 추천 받는 식이다. 국가별·종류별·품종별 설명 등 배경지식은 덤이다. 와인에 대한 수다라고 봐도 무방한 이 서비스는 때로 1시간 넘게 진행되기도 하며, 와인을 사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1만원대든 몇십만 원 선이든 1병씩은 구입하는 고객이 대부분이다.

이가 바로 와인도어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매출 200% 확대에 성공한 비결이다. 실제로 다수 와인숍에서 이 같은 시음 서비스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또 와인도어는 보통 와인숍들이 와인을 국가별로 분류해 놓거나 점주의 취향대로 특정 지역 및 품종에 치중하는 것과 달리, 취급 범위는 넓히는 한편 품종별 분류 방식을 택하고 있다. 곽 대표는 “선호하는 와인의 품종만 알면 어디에서든 취향에 맞는 와인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이러한 성장은 할인 행사를 단 한 번도 시행하지 않은 가운데 이뤄졌다. 가격에 대한 타협보다 ‘맛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곽 대표의 와인 철학이다. 싼 값에 혹해 산 와인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가치 있는 소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곽 대표는 “와인은 무조건 마셔 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혼술’ 및 ‘홈술’ 트렌드로 와인숍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시장 환경에서도 와인도어는 이 전략들을 통해 경쟁력을 입증했다는 평가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홍콩을 제치고 현재 아시아 지역에서 와인 수요가 가장 많은 국가로 올라섰다. 관세청에 따르면 한국의 작년 와인 수입액은 전년 대비 70% 가량 성장한 약 5억6000만 달러(약 6900억원)를 기록했다.

와인도어에서 시음을 통해 와인 취향을 찾아 주는 ‘와인 가이드’ 서비스가 이뤄지는 모습 (사진 제공=와인도어)

 

“조금 과장해서 와인 수는 별만큼 무수하다. 죽을 때까지 공부하며 즐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곽 대표는 요샛말로 ‘덕업일치’의 주인공이다. 올해로 불혹을 맞은 그는 19년 경력의 와인 전문가로, 인생의 절반을 와인과 함께 보낸 셈이다.


곽 대표가 걸어온 와인의 길은 그야말로 도전의 역사다. 대학에서 외식 산업과 조리를 전공한 그는 주방을 뛰쳐나와 홀에서 고객과 소통하는 일을 택하면서 본격적으로 와인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당시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추천하는 일을 하던 곽 대표는 제대로 된 지식 없이 정해진 설명을 반복하는 데 회의감을 느끼면서 소믈리에 과정을 밟았고, 소믈리에가 된 뒤에는 와인 생산 과정을 실제로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영국의 브라이턴대학교와 플럼턴칼리지에서 각각 비즈니스 매니지먼트와 와인 비즈니스를 전공, 현지 와인 양조장부터 레스토랑·숍·포도밭 등을 두루 거치며 밸류 체인을 섭렵했다. 와인 가이드도 곽 대표가 6년 반 동안 영국에 머물면서 얻은 아이디어다.

이후 곽 대표는 지난 2013년 귀국, 글로벌 최대 와이너리로 꼽히는 미국 E&J 갤로의 한국 지사에서 7년여 간 일하다가 마케팅·수출·영업·판매 등 전방위적으로 쌓아 온 와인 비즈니스 역량을 살려 창업했다. 한때는 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모든 것을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갈증은 멈추지 않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곽 대표는 아직도 도전하고 싶은 일이 많다. 그는 “마케팅과 무역, 양조 등 와인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로 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무궁무진하다”라면서 눈을 빛냈다.

곽 대표는 현재 ‘WSET 국제 와인 전문가 과정 인증’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다수 기업체 및 와인 판매직 대상의 강연도 300회 이상 나간 바 있다. 또 그는 지난해 ‘아시아 와인 트로피’ 심사를 비롯해 유튜브를 통한 와인 콘텐츠 제작으로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곽 대표는 “아직도 수많은 와인이 있는 곳을 가면 설렌다”라며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을 소개하는 기분”이라면서 ‘와인 중매쟁이’를 자처했다. 그는 “누군가는 맛없다며 욕하는 와인이 짝을 만나거나, 까다로운 고객의 입맛에 맞는 와인을 찾을 때 기쁘다”라며 “와인을 몰라 1만원대를 찾던 고객이 어느 순간 10만원짜리를 편하게 즐길 때도 보람을 느낀다”라고 덧붙였다.

박민규 기자 minq@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