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라떼] 민형배 탈당, 국회 선진화법 무력화 논란
“나 때는 말이야” 사람들이 현재를 지난날과 비교하며 지적할 때 자주 붙이는 말이다. 이를 온라인상에서는 ‘나 때’와 발음이 유사한 ‘라떼’라고 부른다. 브릿지경제신문은 매주 현 21대 국회 최대 현안에 관해 지금은 국회 밖에 있는 전직 의원들의 훈수, 라떼를 묻는다. 여권에선 더불어민주당의 이목희·김형주 전 의원, 제1야당 국민의힘에선 김재경·홍일표 전 의원이 나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는 2012년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을 만들면서 처음 생긴 제도다. 다수당의 횡포를 막고 소수당의 목소리도 반영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조치 중 하나로, 국회선진화법 논의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앞장서 주장한 제도다. 그런데 이번에는 과반 의석의 민주당이 ‘위장 탈당’까지 동원하며 이 제도를 악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속도전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 소속 자당 민형배 의원을 ‘위장 탈당’시켜,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 비교섭단체 위원으로 배정해 검수완박 입법안 처리를 밀어붙이려 한다는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당초 민주당은 정당 간의 견해차가 큰 사안을 논의하는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를 유리하게 구성하기 위해 자당 출신 무소속 양향자 의원을 기재위에서 법사위로, 법사위 소속 민주당 박성준 의원을 기재위로 맞바꿔 사·보임했다. 하지만 양 의원이 검수완박 법안 반대 소신을 드러낸 문건을 직접 쓴 사실이 지난 20일 확인되면서, 법사위 소속이던 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돌연 탈당을 선언했다. 민주당은 민 의원을 양 의원 대신 비교섭단체 1명자리에 배치해 4월 임시국회에서 입법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민 의원의 ‘위장 탈당’이 알려지자 국민의힘의 권성동 원내대표와 법사위원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 의원을) 비교섭단체 몫으로 둔갑시킨 것”이라며 “민주당이 양 의원의 사보임에 이어 편법과 꼼수로 국회를 파행으로 몰아넣는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회선진화법을 만들 때 다수당에게 신속처리안건 제도(패스트트랙)를 무기로 줬고, 소수당에게 준 것이 안건조정위 그리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이라며 “다수당이 돼 소수의 의견을 완전히 묵살하고 안건조정위까지 무력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입법독재 아니고 뭐겠냐”고 비판했다.
민주당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도 22일 민 의원의 탈당과 관련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박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비대위회의에서 “입법 과정에 있어서 첨예한 갈등을 줄이고 소수당 목소리를 반영하는 숙의 기구가 안건조정위원회”라며 “민 의원이 당적을 바꾸면서 취지까지 바꾸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안건조정위원회는) 국회 선진화 체제를 맡고 있다”며 “또다시 편법을 관행으로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목희 전 의원은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이 국회선진화법 취지를 훼손시켰다는 논란’에 대해 “여야가 협의를 통해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검수완박 법안을 합의하는 것이 옳다”면서도 “그동안 검찰이 수사권, 기소권, 공소유지권 등의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제기돼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힘도 무조건 반대만 할께 아니라 국민의 뜻을 받들어 협상에 나서야한다”며 “민주당으로선 협의와 협상이 안 되고 합의의 전망이 불투명하니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킨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 의원의 탈당이) 편법적 측면이 있고 국민들이 보시기에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당 김형주 전 의원은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이 국회선진화법 취지를 훼손시켰다는 논란’에 대해 “안건조정위원회에 무소속을 배정한 이유는 여야 이외에 제3의 목소리, 소수자 목소리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 아니냐”며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민주당의 위장 탈당은 국회선진화법 취지가 상당히 훼손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꼬집었다.
김 전 의원은 ‘국회선진화법을 편법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과 관련해선 “법안을 추가적으로 만들어 보완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본다”며 “정치인들 스스로 법의 취지를 지키려는 자세와 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재경 전 의원은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이 국회선진화법 취지를 훼손시켰다는 논란’에 대해 “정치를 공학적으로 활용내지는 악용을 하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한다”며 “정당은 국민여론을 의식하고 그다음 이걸 통해 얻는 실익을 고민한다. 그러나 내가 볼 땐 민주당이 잘한 결정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회선진화법을 편법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과 관련해선 “법에 이것저것 같다가 붙어 넣으면 임시로 막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은 또 빠져나갈 방법이 생긴다”며 “정치인들이 정치적 양식을 키우고 국민여론을 제대로 의식하는 게 우선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홍일표 전 의원은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이 국회선진화법 취지를 훼손시켰다는 논란’에 대해 “국회 법사위 안건조정위는 다수당이 추진하는 법안이 의석만 믿고 밀어붙이지 못하도록 숙려기간을 갖기 위한 것”이라며 “이런 취지에서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었는데 이번 민형배 의원의 탈당은 본말이 전도되고 안건조정위를 편법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회선진화법을 편법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과 관련해선 “제도의 취지와 상관없이 역이용하거나 편법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있으니 보완을 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사례의 경우를 예로 들면 자당 사람을 탈당시켜 소수정당 대표라는 식으로 집어넣는 걸 막기 위해 탈당한지 며칠 안 된 사람은 대표성을 갖지 않게 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재호 기자 cjh86@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