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경제
‘바티망’ 레안드로 에를리치, 혁신적인 서울에서도 던지는 질문 “무엇이 현실인가” 본문
“서울은 너무나 멋진 도시입니다. 긴 역사도 물론 멋지지만 저에겐 ‘혁신’ 때문에 더 그렇게 와 닿아요. 제가 보기에 한국은 기술적으로 혹은 패션이나 문화 분야에서 앞장서 있고 많은 기여를 하고 있거든요.”
건물은 그 사회와 도시를 반영하곤 한다. 그런 건물과 공간에 거울, 트롱프뢰유(Trompe-l’oeil, 평면을 3차원 공간으로 보이게 하는 등 착시를 유도하는 눈속임 미술) 등 활용한 시각적 효과로 새로운 자각과 시선을 일깨우는 작가 레안드로 애를리치(Leandro Erlich)는 서울에 대해 “멋진 도시”라고 칭했다.
그의 대표작인 ‘바티망’(Batiment)을 비롯해 잃어버린 정원(Lost Garden, 2009), ‘교실’(Classroom, 2017) 등 설치작품이 ‘바티망’(12월 28일까지 노들섬 복합문화공간 노들서가)에서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3점의 대형 설치작과 더불어 ‘세계의 지하철’(Global Express, 2011), 비행기(El Avion, 2011), 야간 비행(Night Flight, 2015), 수영장(Swimming Pool, 1999) 등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바티망’은 관객들에게 굉장히 접근하기 쉬운 체험을 제공합니다. 인지에 대한 논의를 할 때 문화적 배경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나마 차이가 보일 수도 있는 것은 사람들이 작품과 어떤 상호작용을 하고 어떤 경험을 하는가죠. 그럼에도 세상은 글로벌화되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비슷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착시, 중력 거스르기 등을 통한 일상의 새로운 인식 ‘바티망’
“저는 항상 인지로부터 출발하는 이야기를 써 나가는 것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는 우리가 지식을 결합하고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거든요.”
그는 건물과 도시, 착시와 중첩, 거울과 또 다른 투영, 일상에서의 자각 등을 다루는 작업에 대해 이렇게 전하며 “따로 메시지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미술은 해석을 필요로 하죠. 제 작품은 관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자유롭게 상호작용하며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경험을 제공하고 그 경험을 통해 관객이 주도적으로 행동하며 영감을 얻고 경각심을 가지게 하죠.”
2004년 파리에서 만들어져 18년 동안 파리, 런던, 베를린 등 전세계 도시를 투어한 몰입형 설치작 ‘바티망’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표현처럼 “보통의 것을 특별한 것으로 변형시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일”이며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방법”이다.
“저는 오랜 기간 투어를 하며 지역에 따라 ‘바티망’을 변주하곤 했어요. 하지만 이번 서울 전시는 원본을 보여드리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외국인으로서 저는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물들에 큰 매력을 느끼지만 제가 이국적인 것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 쌍방향임을 깨달았거든요. 서울의 관객들이 파리의 건물을 본다면 큰 감동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그의 예술 매개체인 도시와 공간은 적지 않은 변화를 맞았다.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코로나는 서울뿐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도시들에 영향을 미쳤다”며 “대부분은 사회적 교류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코로나가 사람 사이의 거리와 불신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절 두렵게 합니다. 또한 즐거움이라는 감정에도 영향을 미쳤죠. 지금 서울에서의 제 전시가 적시에 진행된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이제는 밖으로 나가서 경험하고 영감을 얻을 때입니다. 조금의 기분전환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죠.”
◇실제와 환상의 경계에서 던지는 질문 “무엇이 현실인가?”
착시, 중력 거스르기 등으로 표현되는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작품세계는 스스로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것만이 옳다고 믿는 ‘지식의 오류’ 혹은 장자의 ‘호접몽’을 연상시키곤 한다. 그는 ‘지식의 오류’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논의돼온 주제”라고 말문을 열었다.
“실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우리는 이걸 온전히 인지할 능력이 있는가? 이런 철학적인 질문들은 수천년이나 지속돼 왔죠. 그리고 지속돼 마땅한 질문입니다.”
더불어 “무엇이 현실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그의 작품세계는 나비가 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꿈에서 깨어나 ‘내가 꿈을 꾸고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을 꾸고 지금의 내가 된 것인지를 알 수 없다’고 했던 장자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이에 대한 질문에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아주 정확하다”며 “이러한 상, 생각은 아시아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에서도 오래 전부터 논의됐다”고 답했다.
“문화적 진화는 오래된 미스터리들에 답을 줄 수 있었죠. 하지만 현실은 변치 않는 진리가 아닙니다. 다른 쪽에서는 항상 변화하고 있거든요. 우리가 항상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경계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어 “제 작품은 일종의 탐험”이라며 “관객들이 제 작품을 통해 현실의 사물들에 의문을 제기하길 바란다. 비판적인 감각은 현실을 더욱 잘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12월 마이애미 페레즈 미술관(PAMM)에서의 대규모 회고전, 여러 도시에서의 상설전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 중인 그는 “제가 새로운 걸 배울 수 있게 해주는 도전적인 프로젝트, 새로운 작업은 항상 저를 자극한다”고 털어놓았다.
“제 신념 중 하나는 미술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은 하지만 특정 임무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미술은 시대를 묘사하는 능력이 있죠. 단순히 신문의 헤드라인들을 읽어서 시대에 대한 얘기를 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연결돼있고 깨어있어야 한다는 의미죠. 저는 여러 곳에서 영감을 얻는데 그 중 하나는 제 자신을 편안함에서 영구적으로 끌어내는 것이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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