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경제
영화가 된 '물방울 화가'… "거장 아닌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었죠" 본문
지난해 세상을 뜬 김창열 화백의 둘째 아들인 김오안 감독은 고인이 현지에서 만난 프랑스 여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말수가 거의 없는 아버지는 다른 부모와는 달랐다. 잠들 때 동화 이야기를 해주기보다 명상수행을 하며 눈꺼풀을 잘라낸 달마이야기를 해주시는 분이었다. 고향이야기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림이 팔리고 한국에 초청될 때마다 아버지의 유명세를 만끽했지만 한국은 늘 ‘먼나라’였다.
그런 그가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근 5년간 촬영된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한 예술가의 인생을 조망하기보다 불행했던 시대를 견딘 인간의 내밀한 속내를 담고 있다. 가족을 찍으면서 생기는 주관적인 연출을 피하기 위해 10년 전 전시 기획자로 만난 브리짓 부이요 감독을 공통 연출자로 섭외했다.

감독이 본 아버지는 타인에 대한 친절함 보다는 자신의 세계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연출을 함께하는 부이요 감독 또한 “말이 없는 분인데 말을 하게 만드는 게 가장 어려웠다”며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제빵사로 늘 달콤한 냄새를 풍기며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안아주던 아버지와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그는 “비교하긴 그렇지만 강아지도 말이 없지만 그저 옆에 누워만 있어도 사랑을 느끼지않나. 김오안 감독과 화백님도 그런 사이였다”고 미소 지었다.

틈만 나면 미술관을 찾는다는 부이요 감독은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를 찍으며 아방가르드한 김 화백의 그림에 흠뻑 빠졌다. ‘한국의 유명한 화가’라는 말을 듣고 선입견을 가졌던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물방울 시리즈’에 담긴 예술혼에 심취된 상태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개봉과 동시에 오는 10월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동명의 사진전도 동시 진행한다.
분단국가가 가진 비극과 그때 경험한 상처와 그리움을 예술로 승화시켰던 아버지의 영화 중 살리지 못했던 숨겨진 이미지들이 전시된다. 김 화백은 생전에 전쟁 트라우마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물방울로 표현하며 치유했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이 작품은 그를 다룬 첫 다큐멘터리다. 약 79분 간의 러닝타임 내내 초창기 그림부터 최근작도 화면에 담겨있다. 살아생전 200억원이 넘는 그림들을 팔았지만 늘 고요했던 아버지. 들뜨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본 피의 상흔을 물방울에 담았던 건 그 기억을 증발시키고자 했던 건 아닐까.
“엄마, 어버지와의 관계를 알 수 있는 글과 편지,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어요. 어머니는 ‘예술은 공공재’라는 입장을 고수하시는 분이라 기증되지 못했던 그림들도 곧 대중적으로 만날 수 있으실 겁니다.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신을 미처 담지 못했는데 전시회에서 만나실 수 있어요.(웃음)”
지난해 소천한 고인은 피난 시절 제주도에서 1년 정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안남도 맹산이 고향이었던 그는 제주도를 ‘제 2의 안식처’로 삼았고 가족의 동의를 얻어 작품 수백점을 그 곳에 기증했다. 제주도는 한림에 직접 미술관을 지었고 지금도 연간 수만명의 사람이 이 곳을 찾고 있다. 김 감독은 “제주도에서 이중섭 화백을 몇번 만났다고 하시더라”면서 “곧 장편영화의 시나리오를 끝낼 것 같다. 아버지의 나라에서 내 영화가 또다시 개봉하길 바란다”고 미소 지었다. 92세로 세상을 뜬 김 화백은 무뚝뚝하고 엄한 아버지였지만 예술적 DNA를 아들에게 물려주며 또다시 ‘피의 연대’를 완성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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