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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기직전의 뜨거움, 영화 '보일링 포인트'

브릿지경제 viva100 2022. 8. 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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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일링포인트’는 질주하는 주방의 뒷편을 고스란히 느끼는 한편, 나는 과연 어떤 손님의 유형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사진제공=㈜이놀미디어)

4일 개봉한 영화 ‘보일링 포인트’는 한마디로 미쳤다. 10분도 아니고 부려 한 시간 반 동안 단 한 컷도 끊지 않고 원테이크로 촬영됐는데 완성도가 상당하다. 눈 앞에서 그릇이 서빙되고 요리가 만들어지는 생생함이랄까. 그 사실을 모르고 보더라고 ‘보일링 포인트’의 매력은 상당하다.

배경은 레스토랑에서 가장 바쁜 시기인 크리스마스 즈음의 한 주방이다.수석 셰프 앤디(스티븐 그레이엄)는 어제 저녁 실수로 주문을 깜박 잊은 상태다. 다행인건 노련한 부주방장 칼리(비넷 로빈슨)덕분에 최대한 있는 재료를 가지고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다.

‘보일링 포인트’는 키친 서스펜스라는 장르에 걸맞는 소재들이 가득 차 있다. 쏟아지는 주문 속에서 모든걸 총괄해야 할 앤디의 일은 차고 넘친다. 식당 오너의 딸이자 매니저는 식당의 운영보다 인스타그램 홍보에 더 공을 들인다. 매번 손님을 넘치게 받는 오버 부킹으로 주방 스태프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지만 아랑곳 하지 않는다. 블로거(지)가 와서 메뉴에도 없는 음식을 주문해도 와인까지 서비스하며 평판에만 신경쓴다.

 

프랑스에서 갓 넘어온 신입 주방장은 자신의 영국식 발음을 못 알아듣고 서빙 막내는 수시로 지각을 한다. 설겆이를 담당하는 유색인종들도 골치 아프다. 임신 막달이라 그런지 속도도 더디고 그나마 한 명은 약에 빠져 걸핏하면 결근이다. 음료와 술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즐겁게 일 하는건 좋은데 너무 하이 텐션인게 흠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잡담하고, 서로에게 작업건다. 이 곳이 그나마 유지되는건 앤디의 정직한 요리 덕분이랄까.

그렇다면 손님들은 우아할까. 고급 레스토랑 특유의 부유한 공기가 차 있지만 어딘지 위선적이다. 백인 서버가 등장할때는 이름도 물어보고 만족하던 사람이 흑인으로 바뀌자 대놓고 불쾌해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프로포즈 세레모니를 준비하던 남자는 인생 최악의 날을 맞았다.

알러지가 있어 모든 음식에 ‘땅콩을 비롯한 모든 견과류를 빼달라’고 했지만 주문실수로 호두 오일이 뿌려진 샐러드를 먹고 응급차에 실려가는 여자친구를 봐야했다. 하필 이날은 위생 관리관이 급습, 입맛 까다로운 평론가 여자친구를 둔 과거의 동료까지 눈에 불을 키고 앤디를 바라보고 있다.

주방을 총괄하는 셰프의 무게를 그렸다고 하기에 ‘보일링 포인트’의 초점은 꽤 다각적이다. 실제로 배우들이 직접 요리를 하고 와인잔을 따르며 시시덕거리는데 그 북적거림 속에서 수많은 인간애가 부딪힌다. 앤디는 누가봐도 성공한 셰프지만 남편과 아버지로서는 위태롭다. 음식관련 방송으로 스타가 된 동료는 사실 빚에 허덕이고 있다. 입사 2주차인 파티시에는 습관적인 자해를 한 과거가 있다.

‘보일링 포인트’는 쌍욕이 오고가고, 불,물이 부딪히며 초단위로 흘러가는 그 곳에 달콤한 슈크림같은 위로를 살짝 얹은 모양새다. 무엇보다 남들에게 멋진 음식을 대접하면서 겪는 전쟁터는 우리가 알던 주방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시기,질투,미움과 원망이 오고가도 ‘동지애’로 귀결되는 모습은 ‘보일링 포인트’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어서 더 매력적이다.

든든한 동료였던 칼리의 진심이 드러나고, 앤디가 손에 들고 스포츠음료처럼 마시던 액체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인간이 가진 탐욕과 상처가 끓어넘치기 직전의 물처럼 부글거린다. 필립 바랜티니 감독은 배우로 활동하기 위해서 틈틈이 일했던 주방의 결험을 ‘보일링 포인트’에 녹여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관객을 영화의 일부가 되게 한 뒤 영화가 끝나야 비로소 빠져나오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 말은 거짓이 아니다. 비좁은 주방, 손님과 직원들로 북적이는 홀을 익숙하게 오가며 인물과 사건을 근거리에서 담는데 단 한번의 NG도 없이 살려낸 그에게 박수를. 15세 관람가.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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